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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뉴스

어느 청년의 상상이 녹아 있는 곳 '작은따옴표'

어느 청년의 상상이 녹아 있는 곳

작은따옴표

 

 

신림역, 역세권 고층빌딩과 상업지역을 벗어나 한 10여 분 걸으면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통의 동네, 보통의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작은따옴표’는 그 보통의 동네에 간판도 없이 들어서 있다. 일부러 찾으려 해도 힘든 곳, 게다가 건물 주차장 쪽으로 난 입구로 꽤 깊게 들어가야 그곳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갸웃거리며 찾아 간 공간은 의외로 넓지만 어둠침침하다. 작은따옴표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짐작도 안 된다. ‘나 여기 있소, 찾아오시오’라는 어떤 표식도 없으니 사람들이 문턱이 닳게 드나들어야 하는 상업적 공간도 아닐 것이다.

 

 

대학에 다니고, 졸업장을

받는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까?

 

 

작은따옴표는 2014년 2월 28일에 문을열었다. 이곳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장서영이라는 청년에 대해 먼저 언급해야한다. 그의 꿈이 시작 된 곳이고, 그 꿈이 자라고 있는 곳이고, 그곳에서 실험이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장서영은 22세의 아리따운 청년이다. 조금 더 덧붙이면 그림에서부터 디자인, 사진, 영상, 프로그램기획, 노래, 악기까지 두루 다루는 종합예술가다. 미국 코네티컷 주에 소재한 대학에 재학 중이다. 그런데 이 대학의 제도는 2년은 한국에서 지내고 2년은 미국으로 건너가 수업을 한다. 그 나라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이 유학생들에게 크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생긴 제도로 처음 2년은 교수가 한국으로 와서 수업을 진행한다. 장서영은 이배려 깊은 대학에 2012년에 입학해 2년간 공부했고 미국으로 가야하는 3학년을 앞두고 휴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전공으로 삼고 싶었지만 형식적인 입시 미술 공부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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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술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이다. 대학에서는 맘껏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너무 좋았으나 배우고 싶지 않은 수업도 해야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노래 부르기와 듣기가 너무 좋아 시간 날 때마다 피아노와 기타를 독학했고 2학년 2학기 대학축제 때 학교가 요제에 참가했다. 예선에서 10명 안에 들어 본선에 진출했고 500명의 청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전율이었다. 자신에게 있던 또 다른 재능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밴드를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고 2학년 2학기 말쯤 밴드와 그림을 동시 진행했다. 음악도 하고 그림도 하려니 다른 끼들이 스믈스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전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공부요, 삶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 휴학을 결정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길이었다. 그동안은 부모, 학교, 학원 등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선택되었다면 휴학은 자신의 선택이었고 무한정 책임이 뒤따르는 결정이기도 했다.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싶을 때 그림 그리고, 가고 싶을 때가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이쯤 되니 장서영 씨 부모님의 재력이 꽤나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어머니는 주부예요. 부자는 아니고요. 1,300만원이라는 등록금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부모님께 부담 드리고 싶지 않아 대학내내 열심히 했고 장학금으로 다녔어요. 3, 4학년치 장학금도 지급한다고 학교로부터 보장을 받아두었죠.”

 

3, 4학년치 2년간 장학금까지 준다는 데 왜 휴학을 하냐고 주변 지인들은 혀를 찼다. 하지만 “학교에 계속 다닌다고 해서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결론은 ‘아니다’였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볼까?

 

 

2014년 2월 상경해서 우연히 최게바라 기획사의 3.1절 위안부할머니 프로젝트 기획과 팜플릿 디자인을 하게 되었고 그 1개월 동안 3.1절과 위안부에 대한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그 행사에 쓰인 디자인을 보고 회사디자인, 웹디자인, 포스터디자인 등을 해달라고 세 군데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금액으로 치면 100만 원 남짓한 돈이었지만 신기했다. 돈을 벌려고 한 게 아닌데 하고 싶은 걸 하니 돈이 따라왔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운 장서영 씨의 눈과 생각이 ‘하는 일마다 신기하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2월 내내 최게바라 기획사 사람들과 지냈다. 관계는 공고해졌고, 거기서 맺어진 인연들이 장서영 씨의 또 다른 생각과 장을 여는 힘이 되었다. 그가 새롭게 도전하고자 했던 일은 전시와 공연이었다. 그후 자신만의 전시와 공연을 하고 싶어 이곳저곳에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경험과 스펙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곳에서 거절당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래, 그들이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 공연하고 전시하자!’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야지. 어디에 만들까?’

 

주변 사람들은 돈도 없는데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좇지 말고 아르바이트를해서 생계비를 벌어야 한다고 권했다. 장서영 씨는 이상했다. ‘난 돈을 벌려고 서울에 온 게 아닌데….’ 그러면서 2월 한 달 동안 친구집에서 얹혀살았다. 친구 대신 청소도 하고 장도 보고 요리도 하면서 얹혀사는 밥값을 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자신의 디자인 스타일을 탐구하면서 공간을 알아보러 다녔다.

 

 

복합문화공간을

신림동에서 연 이유

 

 

어디에서 공간을 열까? 열심히 고민하던 장서영 씨는 1인 가구 청년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산다는 신림동으로 결정을 내렸다. 게다가 얹혀살았던 친구도 장서영 씨를 좇아 휴학한 상태라 둘이서 2월 한 달 내내 신림동 바닥을 다 훑고 다녔다. 한 40여 군데쯤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신림동을 뒤지다 보니 신림역 부근 역세권만 활성화되어 있고 신림역에서 한 두 블록만 벗어나도 완전히 문화의 불모지였다. 문화마을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현재의 공간은 130제곱미터의 면적에 보증금 700만 원, 월세 73만 원이다. 공과금 등을 포함하면 월 90~100만 원 정도 든다. 오랫동안 안 쓰고 있던 공간이었는지 먼지, 거미줄, 벌레, 곰팡이는 말할 것도 없었고 바닥에 모래가 가득이었다. 닷새 동안 밤을 새워가며 청소를 했다. 찜질방 갈 돈도 없어 온풍기에 의지해주워온 매트리스 하나 놓고 그 위에서 네 명이 껴안고 잤다. 온수도 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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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던 공간에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자 집기도 하나둘씩 늘어났다. 온풍기 등 한두 가지를 빼고는 매트리스, 앰프, 서랍, 냉장고, 세탁기, 2층 침대 등 모든 집기와 물건들이 공간에 놀러왔던 분들이 청년들에게 감동했다며 보내준 것들이다.

 

온풍기 2대가 택배로 오고, 선풍기도 오고, 냉장고, 세탁기는 용달비를 스스로 대며 갖다 주었다. 그중 원래 알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공간에 왔다가 좋은 감정을 갖고 도와주었다.

 

어느 날 장서영 씨 스스로 신기해서 사람들이 보내준 물품을 돈으로 환산해보았다. 족히 800만 원 돈이었다.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했다면 이런 지원과 도움은 없었을 거예요. 보통은 돈을 벌어서 이런 물품을 사요. 아이러니죠. 삶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요. 돈이라는 것 또한 사람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지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람을 봐야 해요. 사람들은 돈만 보는데 돈보다 사람이 먼저이며 사람이 더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식처럼 굳어져버린 세상을 거꾸로보기 시작하는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모두 의미심장하다. 그 단순한 진리를 두고 사람들은 돌아돌아 어려운 길을간다. 장서영 씨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와 관계를 만들어갔다. 어른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먼저 돈을 벌라고 했지만 장서영 씨는 단순명쾌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였다.

 

2014년 여름 마을에 공연문화를 만들고 싶어 도림천에서 거리공연을 했다. 도림천변에는 노숙자가 많은데 혼자 노래 부르면 그들이 와서 박수를 쳐주었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소중했고 행복했을 텐데,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노숙자가 된 그들도 질타를 받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장서영 씨는 생각한다.

 

노숙자들의 얘기를 들었다. 5명 중 3명이 CEO였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잘나갈 때 사람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자신에게 이득이 안 되거나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되면 무시했다고 했다. 노숙자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며.

 

“사람을 그렇게 쉽게 판단하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어.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했다.

 

그것이 또 장서영 씨의 구상에 불을 지핀다.

 

“노숙자프로젝트로 지하철 안에서 패션쇼를 하는 거예요. 첫 칸부터 끝까지런웨이를 하는 사람은 모두 노숙자인데 그들을 완전 꾸면서 런 웨이를 할 겁니다. 관객은 의자에 앉아있어요. 피날레는 노숙자들이 다시 원래의 노숙자로 돌아와요. 같은 사람, 겉만 다른 거지요. 누구나 실수를 해요. 그리고 다 똑같은 사람이에요. 겉으로 판단하지 말자는 거지요.”

 

 

작은따옴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어떤 이의 속 깊은 생각이나 감정 또는 진심을 담은 것이 작은따옴표 ‘OO’다. 이 공간에 오는 누구든 이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 공간을 통해 느낀 그 사람의 감정과 진심을 그대로 ‘OO’ 속에 담아 기억해주면 된다는 의미로, 누구나의 감정과 진심이 ‘OO’에 담기는 곳이었으면 해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작은따옴표에서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 일단 파티를 하고 그냥 논다. 1인 가구 네트워크 파티와 콘서트를 하고 있는데 마을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마을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획되었다.공간을 준비하면서 구의원과 각종 단체 대표, 관악구주거복지센터 등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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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 FM 등을 찾아다니면서 마을에 대한 얘기와 컨설팅을 받았다. 그 결과 1인 가구로 집중하기로 했다. 1인 가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교류와 만남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여덟 차례 진행했다. 한 회에 40여 명 정도가 참여한다. 청년들의 파티는 어떤 모습일까? 처음엔 지인이 오고 그 지인의 소개로 생면부지의 청년들이 온다. 각자 음식 한 가지씩을 들고와 같이 밥 먹는 포트락파티로 하고 소개, 게임, 공연, 뒤풀이까지 밤새 놀고 아침 8시경에 끝난다.

 

네 명이 살고 있기 때문에 운영시간은 24시간이고 파티시간은 무제한이다. 지인들이 모이는 자리도 있다. 지인들의 손을 잡고 10여 명 모여 음악하는 사람들이 밤새 즉흥 연주를 하며 놀기도 한다.작은따옴표에서는 파티, 전시, 공연, 뮤지컬, 워크숍, 스터디, 강의, 세미나, 게스트하우스 등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처음 시작할 때 둘이었던 식구가 서너 명으로 늘더니 지금은 스무 명 정도가되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마라, 하루하루가 설레고 행복하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하고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산다.”

 

장서영 씨의 이런 얘기를 듣고 휴학하고 직장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서로 위로하고 챙겨주고 북돋아주는 그런 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떤 이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처음 느낀다고도 했다. 따스한 봄볕을 만나 자유로운 날개를 펴기 시작하는 이들은 주로 20대 초, 중반의 청년들이다. 10월에는 마을축제도 했다. ‘다리밑축제’로 작은따옴표 앞으로 흐르는 도림천 3개의 다리 밑에서 2시부터 11시까지 공연을 했다.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해서 밴드공연과 행위예술을 했는데 1,000여 명의 주민과 관악구의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대거 왔다. 참가자들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주변에서 마을사업으로 주민제안사업 신청을 해보라고 해서 1인 가구 네트워크 파티로 3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서울시에 공간지원사업을 신청했는데 탈락했다. 현장심사를 하러온 분들은 하나같이 다 좋고 신뢰도 가는데 심사에 필요한 정관이나 체계 등이 없어 어쩔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그런 부족한 것을 채워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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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마라

 

 

“내 상상은 현실이 된다. 아니 나의 상상은 나의 작은 계획에 불과할 것이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진심을 다해 살다보면 상상 이상의 것이 펼쳐진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장서영 씨의 말이다. 이 청년은 사람들의 이야기, 고민듣기를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생판 모르는 아이가 와서 고민상담을 하기도 했다.어렸을 때도 하고 싶은 것은 부모님을 끝까지 설득했다. 육상선수도 했고 수영, 스쿼시, 배구 등 체육에도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 부모님은 하고 싶은 것은 하고야 마는 아들이라는 걸 알고 늘 믿어주었고 밀어주었다. 그래서 이 청년에게는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

 

장서영 씨는 작은따옴표 2,3호점을 확장하고 싶고, 식구가 많아져서 기수별운영도 해보려고 한다. 또 후원 투자자를 받아서 그 이상의 것도 해보겠다는 구상도 있다.

 

‘따옴제’라는 회원제도를 두어 한 달에 4만 원을 후원하는 이에게는 공간도공유하고 공간개선을 위한 비용에도 쓰려고 한다. 작은따옴표의 가장 중심적인 활동은 1인 가구를 위한 1인 가구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많은 청년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꿈을 찾고 실현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고 청년의 꿈의 실현을 위한 지원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내가 처음 공간을 구상할 때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 사람들이 이해는 되지만 그 말들을 깊이 있게 받아들이기는 싫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열정이 가득찬 눈빛으로 똑같이 무모해 보이는 꿈을 저를 바라보며 저에게 늘어놓을 때 저는 이렇게 뛰다가 넘어지면 아프니까 뛰지마라며 만류하는 것이 아니 까짓거 한번 뛰어보라며 안아주거나, 보라고 나도 이렇게 살고 있지 않느냐며 응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생은 한 번 뿐입니다.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더라도 뛰어들지 않는다면 그 길은 무의미하지요. 뛰어들다보면 넘어져 아프기도 하고 흉도 지지만 결국 다시 일어납니다. 이 모든 것이 곧 인생입니다. 사람들이 행복을 저축, 저장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큰 착각이지요.

 

예술가들이 직장다니며 돈을 벌고 부업으로 예술활동을 하고 돈을 벌어 나중에 예술한다고 미뤄요.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청년들의 복합문화공간을 다 돌아다니려는 계획도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청년은 그들을 만나면 또 구상이 넘쳐날 것이다. 청년들이 끌어올리는 희망과 세상 다시 써가는 열정이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세포를 살아 역동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 작은따옴표. 청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아니 상상, 그 이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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